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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모의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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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사례번역-호주] overview of forced adoption practices in Austr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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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다유니맘06 작성일15-02-06 13:17 조회1,18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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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자로 구성된 해외사례번역팀은
 미혼모에 대한 해외사례와 관련정책기사에 대해 번역하면서 소통하는 모임입니다]

Overview of forced adoption practices in Austr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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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age provides an overview of forced adoption practices in Australia. It includes a summary of the findings of the Senate Inquiry Report, Commonwealth Contribution to Former Forced Adoption Policies and Practices, 2012, but is not exhaustive.
이 페이지는 호주에서의 강제 입양관례 에 대한 개요를 제공한다. 이것은 2012년에 나온 (이전의 강제 입양 정책과 실행에 대한 기여) 의회 조사 리포트의 요약을 포함하고 있지만, 빠트린 것도 있다

의회 조사 리포트

상원 조사 리포트는 ‘강제 입양’을 ‘자녀의 친부모가 입양을 위해 자녀를 포기하도록 강요 받는 것’으로 정의했다. 지역 사회의 상원 상임 위원회는 그 간의 강제 입양에 대한 문서와 증언을 조사하였고, 1950년과 1975년 사이에 강제 입양이 가장 많이 발생했다는 것을 밝혀냈다.

의회 조사 리포트는 1940년과 2012년 사이에 21만 명에서 25만 명의 입양이 있었다고 추정했다. 1940년은 위원회가 기록을 발견한 첫 해였다. 이는 뉴 사우스웨일스, 빅토리아 그리고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의 기록이며, 다른 곳에서의 기록은 발견할 수 없었다. 위원회는 그들이 조사한 기록의 내용이 충분하지 않다고 보았다. 예를 들면, 그 기록은 어떻게 또는 왜 입양이 발생 했는지 혹은 입양이 자의적으로 이루어졌는지 아닌지에 대한 상세한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지 않았다. 이것은 얼마나 많은 강제 입양이 이루어졌는지 정확히 추산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만 명의 어머니들, 아버지들, 입양아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이 몇 세대에 걸쳐 강제 입양으로 인한 악영향을 받고 있다.

강제 입양은 다양한 상황에서 일어났고,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종교인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가족들, 특히 생모의 부모가 딸에게 종종 입양을 강요하곤 했다. 많은 부모들은 그들의 딸과나 손주에 대한 정서적, 재정적 지원을 거부했다. 강제 입양은 병원, 조산원(Maternity home은 다른 살 데가 없는 임신한 여성을 위한, 많은 경우에 교회가 운영) 그리고 입양기관들에서 일어났다. 이 입양은 기관의 성격이 종교적이든 아니든, 정부 지원을 받든 아니든 관계없었다. 많은 기관들이 문을 닫거나 이름을 바꾸었기 때문에 그 기록을 찾는 것이 어렵게 되었다.

법률제정
입양에 관한 법률제정은 주 정부의 책임이자 권리이다. 하지만 북부 지역(1978년)과 호주의 수도권(1988년)이 자치권을 얻기 이전에는 입양에 대한 문제가 연방법에 의해 규율 되었다.

1980년대 개정 전까지 입양에 대한 입법은 비밀 조항으로 다루어지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입양의 법적 효력은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를 분리시키는 것이었다. 명명권(命名權)을 포함한 양육에 대한 모든 권리와 책임은 법적으로 양부모에게 넘어갔다. 원래의 출생신고서는 감춰졌고, 새 출생신고서는 마치 친부모처럼 기재된 양부모가 지어준 아이의 새로운 이름으로 발행되었다. 이러한 기록 말소가 ‘입양되는 아이의 이익을 위한 것’ 이라는 명목하에 자행된 것이다. 즉, ‘입양되는 아이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명목 하에 모든 기록의 말소가 자행된 것이다.

1960년대 통과된 입양 법안은 입양에 대한 동의가 친모로서의 권리에 대한 적절한 정보 없이 강제적인 상태에서 진행되거나, 아이의 출생 이후 일정기간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 서명을 받는 것은 불법으로 규정하였다. 각 주마다 3일에서 7일까지 이 기간은 다양하게 규정되어 있다. 또한 법안에 따르면 30일 이내, 또는 입양절차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입양 동의를 철회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 대체로 어떤 쪽이든 더 짧은 기간이 적용된다.

이러한 법률조항은 친모를 강제 입양으로부터 보호하고, 본인과 가족의 미래에 대한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실상 법안들이 적절히 시행되지 못했기 때문에, 불법 강제 입양이 자행되었다 . 자신의 서류를 나중에 발급받은 친모들은 병원이나 maternity home에 들어가자 마자 그리고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서류에다 BFA (Baby For Adoption 입양 대상 아기)가 찍혔다고 발견했다.

동의와 철회, 취소

아이가 태어난 후, 심신상실 상태의 산모들은 그들의 권리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하거나 동의를 할 수 없는 나이임에도 법적으로 요구되는 일정 기간이 지나기도 전에 입양 동의서에 서명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산모들은 속았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출생 신고서나 치료절차에 대한 동의로 믿었으나, 사실은 입양 동의서에 서명했던 것이다. 동의서 서명의 기억이 없는 산모들 그 서명이 위조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례들도 있다.
산모들은 입양에 대한 동의를 철회할 수 있는 권리에 관련하여 속은 사례도 있다. 많은 산모들은 30일 이내 병원, 입양기관에 동의를 철회하려고 하였으나, 아이가 이미 입양되었다고 말을 들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입양 절차가 마무리 되지 않았고, 아이는 여전히 병원이나 입양기관에 있었으며 어머니는 자신의 아이를 찾을 수 있는 법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다른 많은 산모들은 병원이나 입양기간들이 철회기간에 대에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를 되찾을 수 있는 기회에 대해 몰랐던 것을 몇 년 후에 깨닫고, 망연자실 했다.

강압과 물리적인 탄압
상원의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미혼모들은 스스로 무력하고 아이를 기를 자격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많은 경우, 어린 어머니들은 보통 가족이나 아이의 아버지, 사회로부터 멀리 떨어진 미혼모 시설에서 아이가 태어난 이후까지 생활했다. 이러한 고립으로 인해 그들은 더욱 무력감을 느꼈다. 때로는 고된 육체적 노동을 해야 할 때도 있었으며, 몸과 마음 나아가 의사나 다른 권위자에게 성적으로 학대를 당하기도 했다. 미혼모들은 아이 아버지와의 성적 관계에 관한 치욕적 질문을 받았다. 끔찍한 죄를 지었으니 부끄러워해야 하며, 아이를 키워선 안 되고 그럴 자격도 없다는 말도 들었다.

이런 괴롭힘에 더해 사회복지사나 의사, 간호사들은 강압적인 전략으로써 일반적인 부부가 아이를 더 잘 길러줄 수 있다는 이야기를 계속 반복했다. 미혼모들은, 그녀들이 절대 만들 수 없는 화목하고 재정적으로 안정된 혼인 가정에서 아이가 자랄것이라는 얘기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야 했다.

출산 시에는 침대에 몸이 묶이거나 간호사에게 붙들리는 등 신체적으로 제약을 받았고, 침대시트나 베개로 가로막혀 아이를 볼 수도 없었다. 출산 즉시 아이는 다른 방으로 옮겨졌다. 아기의 상태가 어떤지, 심지어 성별이 무언지 듣지 못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신생아들은 별도의 방으로 옮겨졌고 어머니들은 자기 자식을 보거나 안을 수 없었다. 이는 ‘완전한 단절’ 또는 ‘백지 상태’ 이론, 즉 양어머니와 아기가 최대한 빠르게 지속적 유대를 쌓아야 애착이 생긴다는 이론 때문이었다. ‘완전한 단절’만이 생모와 아이를 사회적 낙인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으며, 물론 잘못된 얘기지만, 생모와 아이가 서로를 잊고 각자의 삶을 살게 해준다는 것이다.

입양 시 생모가 받는 지원

강제 입양의 경우, 생모의 가족과 생부의 지원이라는 변수가 있다. 여성들 중 일부는 아이를 지킬 수 있는 부모의 지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병원이나 산후조리원 직원, 사회복지사들이 이를 무시하고 입양을 진행한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경우, 여성의 부모가 자신들의 법적 권리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많은 미혼모들은 가족으로부터 감정적으로나 금전적으로 지원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부모들은 흔히 가족 중 사생아가 있다는 사실, 심지어 자기 딸이 임신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평판에 해를 끼칠 거라고 생각했다. 부모들은 미혼모에게 아이를 양육할 자격이 없다고 말하며, 금전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지원하기를 꺼렸다. 

아버지(입양아의 생부)

어떤 생부는 생모 또는 아이의 삶과 연관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또 다른 생부는 여자친구의 임신 조차도 몰랐다. 많은 생부는 생모와의 관계를 지속하고 아이를 함께 양육하는 것에 헌신적이었다. 그렇지만, 생부는 종종 폭력 또는 법적인 조치라는 위협에 당면하게 되었고, 조산원이나 산부인과에서 생모의 부모는 고의적으로 딸의 인생에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생부들은 생모들과 마찬가지로 죄를 지었고, 아이를 기를 자격이 없다고 여겨졌다. 대다수는 미혼모들만큼 그들의 권리에 대해 인식하지 못했다.
 
 미혼모들은 ‘혼전 관계’라는 범죄로 생부가 형사처벌에 처해질 수 있다는 위협 때문에 그의 이름을 밝히지 못했다고 전한다. 생모는 생부의 이름을 등록했는데도, 신고서를 작성하는 공무원, 간호사, 의사가 누락시킨 것을 후에 알게 된 경우도 있었다. 생부의 입양 동의는 그의 이름이 등재되어 있는 경우에만 법적으로 요구된다. 이는 생부의 이름이 등록되지 않은 경우에 아이의 입양에 대해서 더 이상의 선택권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입양인(입양아)

강제입양에 의해 입양된 사람들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양쪽의 다양한 인생 경험들을 해왔다. 많은 사람들이 입양을 통해 맺어진 가족들과 화목하고 충만한 관계를 가져왔다.  하지만, 입양가족 내에서 감정적/물리적인 고립, 방치나 학대, 극도로 어려운 생활을 겪어온 사람들도 있었다. 이 중 많은 이들이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가 자신을 버렸으며, 사랑한 적이 없었다고 믿고 있다.

입양된 사람의 대다수가 새 가족과의 관계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상관없이, 입양의 결과로 많은 부정적인 문제들을 겪었다고 말한다. 이는 특히 "자신이 입양됐다는 사실"을 늦게 알아차린 사람들에게 나타났다. 그들은 강한 배신감을 느꼈고, 지속적이고 의미 있는 관계를 형성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또한 고립되고 버림받은 느낌을 받았으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겪었다.

입양기록의 접근

입양기록을 열람하는 것의 어려움과 입양정황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점은 입양된 사람 대다수가 자신의 생부모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 입양이 강제적이었는지 알 수 없었음을 의미해왔다. 입양인들이 건강문제를 관리할 때, 부족하고 부정확한 입양기록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재결합

재결합을 애쓰는 생모, 생부, 그리고 입양인들에게 있어 위의 문제점들은 자동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연락거부권이 재결합을 완전히 차단하는 경우도 있고, 생부모와 만난 사람들 중에는 관계를 쌓는 것이 어려운 사람도 있다. 이제 성인이 되어버린 자녀와 그 부모는 강제입양에 의해 야기된 다양한 문제들과 복잡한 것을 해결해야 한다. 몇몇은 해결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해피엔딩이 반드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출처: http://forcedadoptions.naa.gov.au/content/overview-forced-adoption-practices-austr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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